요즘 고등학교의 근현대사 교과를 둘러싸고 이념 분쟁이 불붙고 있다. 크게 보아 ‘좌우 역사논쟁’이라고 볼 수 있지만 쉽게 ‘좌우’라고만 단순화할 문제는 아닌 듯하다. 역사인식에는 객관적 사실과 진실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시대적 요구나 관점에 따라 과거사가 재인식되고 재해석되는 면도 있다. 그러나 실제 있었던 사실을 무시하고 주관적 해석을 과장하고 덧칠하는 것은 역사왜곡이 아닐 수 없다. 더군다나 2세, 3세들을 가르치는 역사교과서가 편향성을 띠고 있다면, 큰 문제가 아닌가.

좌편향 역사관’에 대한 비판론은 노무현정부 시절 학계와 교육계에서 꾸준히 제기해왔다. 최근 박효종 서울대 교수 등이 참여하는 교과서 포럼의 학자들이 역사 교과서 수정을 교육과학기술부에 요구하겠다는 뜻을 밝혔고 전국 시도교육감협의회가 관련 문제를 논의한 이후 논쟁이 뜨거워지고 있다.

객관적 사실과 진실 부합하도록

문제의 핵심은 일부 교과서가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북한에 대해서는 무척 관대하다는 점이다. 특히 금성출판사가 펴낸 교과서는 “연합국의 승리로 광복이 이루어진 것은 우리 민족이 원하는 방향으로 새 국가를 건설하는 데 장애가 됐다”(253쪽)든지, 올해 삭제됐지만 “남한만의 정부가 세워진 것은 통일 민족국가의 수립이 실패로 돌아갔음을 뜻하였다”는 등의 표현에서 보듯 건국과정에 다분히 부정적 시각을 드러내 왔다.

한국전쟁 발발의 원인과 책임을 희석시키는 표현도 지적된다. “6·25 전쟁은 자본주의-사회주의 체제 대립의 결과”(249쪽)라든지 “6·25 직전 38선 곳곳에서 국군과 북한군 사이에 크고 작은 충돌이 쉴 새 없이 일어났다”(268쪽)는 설명은 냉전 체제 또는 내전의 연장으로 전쟁이 일어난 것처럼 진실을 호도한다. 옛 소련의 비밀 문서가 해제된 이후 거듭 확인된 명백한 사실, 곧 김일성이 스탈린의 승인과 지원을 얻어 전쟁을 일으켰다는 중요한 사료를 외면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한국 경제는 외형적으로 발달했지만 더욱 외국에 의존하게 됐다(327∼8쪽)는 등 빛바랜 종속이론의 견해를 드러내기도 한다. 이런 책으로 공부한 학생들이 과연 우리의 근현대사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겠으며, 또한 한국인이라는 사실에 자긍심을 가질 수 있겠는가.

편향성은 시정해야 한다. 객관적 보편적인 사실을 제대로 반영토록 해야 한다. 남북의 화해가 불가결하다고 해서 역사인식이 가치중립적일 수는 없다. 양시론이나 양비론에 빠져서도 안 된다. 인류의 보편 가치인 인권 신장과 자유민주주의를 기본 가치로 삼아야 한다.

통일 내다보며 접점 모색을

북한에 관대해질 필요는 있다. 맺혔던 과거사를 풀고 화해할 길을 넓혀가자면 그래야 한다. 같은 조상, 같은 언어와 문화의 동질성을 지닌 ‘형제’요 ‘이산가족’이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는 것에까지 눈을 감을 수는 없다. 일제 침략을 겪은 한국이나 중국인들이 가해자를 용서할 수 있어도 침략과 탄압의 과거사를 ‘진출’이나 ‘파견’, ‘진압’이니 해가며 정당화하는 것까지 용인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역사인식의 접점을 찾아야 한다. 사회주의 노선 독립운동가들의 활약상을 우리가 일정 부분 평가하고 인정했듯이 통일 이후 남북의 주민들이, 특히 2세들이 공통분모를 가질 수 있도록 힘써야 한다. 과거사 인식에서 대동(大同)의 길을 찾고 소이(小異)의 막힌 길을 뚫어야 한다.

차제에 남북의 역사교육, 언어교육과 시민교육을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통일에 대비한 중장기적 교육 목표와 방법을 국가적 과제로 의제화할 필요가 있다. 학계와 시민단체 등이 역량과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일인체제를 이끄는 김정일의 중병설이 파다하다. 북한의 체제변화, 경우에 따라선 남북통일의 가능성이 어느 날 갑자기 우리 앞에 닥칠지도 모른다.
(2008. 9. 16자)
Posted by 길따라 구름따라
리비아의 카다피는 일찍이 흥미로운 예언을 한 바 있다. 30여년 전 집필한 ‘그린 북’을 통해 미래 세계는 흑인이 주도할 것이라는 주장을 편 것이다. 논거는 간단하다. 흑인 인구가 날로 팽창해 백인보다 훨씬 많아진다는 것이다. 산아 제한이나 가족계획에 구애를 받지 않는 생활의식과 전통 때문이다. 과거 아시아의 황인종이 세계를 이끌었고, 지금은 백인이 식민주의와 함께 세계를 제패하고 있으나 앞으로는 흑인의 역할이 커진다는 견해다. 정밀한 사회과학적 예측은 아니어도 인구의 잠재력을 내다본 통찰력은 일리가 있어 보인다.

美 대선후보 오바마 등장의 의미

그의 예언은 아직 실현되지 못했다. 흑인의 출산율이 높긴 해도 질병 등에 의한 사망률 또한 매우 높은 까닭이다. 지난 반세기 동안 오히려 아시아계 황인종 인구의 비중이 더욱 커졌다. 이 추세는 상당기간 이어질 것이다. 그럼 카다피의 예언은 빗나간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아직은 폐허처럼 남아 있는 차별의 장벽, 특히 백인의 유색인종 차별 의식은 21세기에야말로 말끔히 해체될 운명이니까.

수백년간 유럽 열강의 식민주의에 시달렸던 ‘검은 대륙’ 곳곳이 제2차 세계대전 후 독립을 얻었다. 혹독한 차별 정책을 유지하며 소수의 백인이 지배했던 남아공도 1994년부터는 흑인이 이끌어가고 있다. 15세기 말부터 유럽과 남북미에 쇠고랑을 찬 채 끌려갔던 아프리카 흑인이 1천만명이 넘었지만, 그 후예들은 노예 해방 이후 꾸준히 사회적 지위를 높여가고 있다.

‘음지가 양지된다’는 말은 인종적으로도 예외는 아닐 듯싶다. 미국에서도 정치인이나 군인 등으로 존경받는 흑인이 늘어간다. 마침내 흑인 대통령 후보까지 탄생했다. 혁명적인 변화다.

아프리카 케냐 출신의 흑인 아버지와 백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이 민주당의 대선 후보가 됐다. 당내 경선에서 힐러리 클린턴을 제압한 것만으로도 미국 선거사에서는 전례 없는 기록이다. 미국 사회를 구성하는 인종이 대체로 백인(비 히스패닉) 67%, 흑인 12%, 히스패닉 14%, 아시아계와 기타 7%이고 보면, 그의 등장은 미국의 정치가 이미 인종차별의 장벽을 넘어섰음을 시사한다. 1776년 미국 건국 232년 만에, 1863년 노예 해방 145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만일 그가 공화당의 매케인 후보를 제치고 당선된다면?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 오랫동안 흑인을 노예로 부려왔던 미국과 유럽 등 전 세계에 흑인 인권 신장의 뚜렷한 본보기가 될 것이다. 다양한 인종과 출신국 배경을 지닌 이민국가 미국의 면모를 온 세계에 각인시키는 일대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장벽 쌓는 정치-종교계의 퇴행

흑인 인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암살된 지 40년. 그의 후손들이 오바마 지지를 외치고 있다. “언젠가 조지아의 붉은 언덕에 그 옛날 노예의 자식들이, 그 옛날 노예 주인의 자식들과 함께 형제애라는 테이블에 앉을 수 있으리라는 꿈”을 외쳤고, 그의 아이들이 “피부색이 아니라 능력에 의해 판단되는 나라에서 살게 될 꿈”을 부르짖었으며, “하느님의 자녀들이, 흑인과 백인, 유태인과 이방인, 신교도와 구교도가 손에 손을 잡고 노래할 날”을 꿈꿨던 그의 열망은 마침내 서서히 현실화하고 있다.

온 인류가 형제애로 하나 되기를 꿈꾸는 세상이다. 이 마당에 한국의 종교계와 정치 지도자들은 무슨 꿈을 꾸고 있는가. 독선과 아집에 머물며 남을 비하하고 배척하는 구태를 일삼고 있지 않은가. 피부색이 달라도, 종교가 달라도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해 주는 관용은 어디 갔는가. 우리는 과연 얼마나 열린 모습인가. 정부와 공무원의 종교 차별이 얼마나 노골적이었으면 불교계가 온통 들고 일어나 항의하는 사태가 벌어질까. 우리의 의식이 ‘동굴’ 속에 머물러선 안 된다. 넓은 세상으로 나서야 한다. 서로 손잡고 저 환한 세상을 향해….
(2008.09.02자)
Posted by 길따라 구름따라
요즘 스포츠 스타의 인기를 실감한다. 이미 국내외에 이름이 널리 알려진 수영선수 박태환이나 피겨스케이팅 선수 김연아만이 아니다. 베이징 올림픽에서 한국에 첫 금메달을 안긴 유도의 최민호 선수에서 세계신기록을 잇달아 갈아치운 역도의 장미란 선수, 양궁과 베드민턴을 비롯해 ‘우생순’ 재현을 꿈꾸는 여자 핸드볼 선수에 이르기까지 많은 스타들이 찬사와 박수를 받고 있다.

운동선수로서 각고의 노력 끝에 세계무대에 선다는 것은 남다른 도전이자 성취의 역정이다. 명예를 얻고, 경우에 따라선 부귀도 얻을 수 있다. 어린 꿈나무들에게 역할 모델이 되는 영예도 있다. 박세리 키즈와 같이 분야 분야에서 제2, 제3의 스타군단이 뒤이어 탄생할 조짐이 올림픽 열기와 더불어 엿보이고 있지 않은가.

끊임없는 담금질--투지와 도전

신체적 조건과 기량이 미치지 못해서 그렇지, 가정환경이 좋은 집의 자녀도 할 수만 있으면 운동선수의 길을 서슴없이 택할 수 있는 때가 되었다. 시대가 달라진 것이다. 장미란 선수가 한때는 운동을 한다는 사실을 감추고 싶었다고 고백했지만, 이는 예전 이야기일 뿐이다. 인기 종목이냐 아니냐에 따라 차이는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큰 흐름으로 보면 스포츠인의 위상은 날로 높아질 게 확실해 보인다. 대중매체도 그들의 투지와 도전, 자기연마의 과정을 부각시키고 있지 않은가.

스포츠의 기업화 또는 산업화 추세도 뚜렷해지고 있다. 프로구단과 후원 기업 등을 갖춘 야구·축구·농구 같은 단체 구기 종목은 말할 것 없고, 개인 경기 종목에서도 스타 마케팅이 활기를 띠고 있다. PGA에서 활약하는 최경주나 LPGA에서 뛰는 박세리 같은 선수들은 이미 글로벌화한 개인기업이다.

그들이 받는 상금은 경기 실적에 따라 연간 수십만달러에서 수백만달러에 이르고, 광고료 등 부수입도 어마어마하다. 운동선수를 보살피거나 뒷바라지하면서 먹고사는 사람도 늘어간다. 감독과 코치는 물론이고 물리치료사, 영양사에 조리사까지 따라붙기도 한다. 이들이 사용하는 운동기구나 장비 등 연관 스포츠 산업 등의 홍보효과까지 따져보면 이들의 영향력은 한이 없다.

선수에게 운동은 취미생활이 아니다. 기록 경신을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담금질해야 하고 경쟁자들과 피 말리는 승부에 나서야 한다. 그렇더라도 응분의 사회적 관심과 대우만 있다면 그런 도전이 왜 기껍지 않겠는가. 최민호 선수는 운동하는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고 했다. 아테네 올림픽에서 딴 동메달에 대한 홀대의 아픔을 훌훌 털어버릴 수 있었던 처방이 바로 운동이었던 셈이다.

열정-몰입으로 세계무대에 우뚝

몰입은 새로운 경지를 열어주기 마련이다. 최 선수가 5경기 연속으로 한판승을 올린 것도 그만 한 내공이 쌓인 결과가 아니겠는가. 온 몸과 마음을 집중한 순간순간이 이미 고통의 질곡이 아니라 삶의 활력을 충전하는 과정이었던 것이다.

오늘의 세기는 기업 경영은 물론 지식이나 기능의 학습마저도 마니아 같은 열정과 몰입이 없으면 높은 수준에 이르기 어렵다. 공부도 스스로 탐구하고 극복하고 성취감을 맛보며 재미있게 해야 진짜 공부다. 몰입과 열정은 상상력과 창의성을 낳고, 더 높은 단계로 전진케 하는 동력이 된다.

스포츠 스타들의 경연이 끝나면 우리의 일상은 어찌 될까. 일터와 교육현장은 과연 신나고 재미있는 일들이, 게임하듯 승부를 걸어볼 일들이 이어질 수 있을까. 올림픽 중계를 보고 싶어도 아예 TV를 외면해야 하는 수험생들, 입시교육에 매몰된 젊은이들에게 지식의 탐구가 재미있고 즐거운 체험이라는 것을 일깨울 소재는 없는 것일까. 스포츠 경기나 게임만큼 극적인 것은 아니라도 투지를 불태우고 승부를 걸어야 할 생활 속 도전의 과제는 산적해 있다. 혼신의 힘을 다해 이겨내리라 스스로 다짐해본다. 우리의 가슴을 설레게 한 태극전사들처럼. (2008.08.19)

Posted by 길따라 구름따라
제2차 세계대전의 패전국이면서도 독일과 일본의 태도는 하늘과 땅 같은 차이를 드러낸다. 독일은 철저히 반성했다. 전범(戰犯)에 대해서도 사법적·역사적으로 단죄했다. 하지만 일본은 A급 전범들의 위패를 전몰자를 기리는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했고 정치인과 지식인들이 공공연히 참배 행렬에 앞장서 왔다. 전범 재판 당시 판사 11명 가운데 유일하게 무죄의견을 낸 인도인 라다비노드 팔 판사의 기념비를 야스쿠니 신사에 건립하고 칭송을 아끼지 않는 것을 봐도 저들의 심리를 엿볼 수 있다. 최근의 독도 논란도 이런 연장선상의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일본의 우파 지도자들은 요즘 ‘자학(自虐)사관’을 벗어나 ‘긍정과 자존의 역사’ 교육을 해야 한다고 외친다. 그러다 보니 ‘침략’을 ‘진출’이나 ‘자위를 위한 정벌‘로, ‘수탈’을 ‘시혜(施惠)’의 역사로까지 미화한다. 진주만 기습으로 태평양 전쟁의 불을 댕겨 놓고도 미국의 원폭투하로 수십만명이 희생됐다는 점을 백배는 더 강조한다.

日, 자존 내세우며 역사왜곡

자기합리화에 몰입하는 일본 우파의 역사인식에는 분명 문제가 있다. 그러나 한국 측이 아무리 비판해도 전혀 달라지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게 뻔하다면 접근 방법을 달리해야 하지 않을까. 일본의 역사, 특히 장구한 한일 교섭사 속에 눈부신 족적을 남긴 ‘도래인’의 역할을 철저히 밝히는 작업은 이런 점에서 대단히 중요해 보인다.

기실 일본의 언어와 역사, 종교, 문화 등은 한반도와의 연관성을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다. 이처럼 흥미진진하고 값진 탐구 과제를 한국인은 외면해왔다. 국내 대학에 일어일문학이나 일본학 연구자가 적지 않지만 대부분 현대어문학 아니면 경제나 자연과학 분야에 치우쳐 있다. 언어와 역사 등 한일교섭사의 뿌리를 살피는 작업은 불모지나 다름없어 보인다. 이 분야 연구는 질과 양에서 일본이 압도적인 우위를 점한다. 이러고서야 ‘극일’이라는 말을 꺼내기조차 부끄러운 일 아닌가.

일본 왕실이 한반도 이주민의 후예라는 사실은 이미 공공연한 사실이다. 2002 한·일 월드컵 준비가 한창이던 2001년 12월 23일 아키히토(明仁) 일왕은 자신의 68회 생일을 맞는 기자회견에서 “옛 간무(桓武·재위 781∼806) 천황의 생모가 백제 무령왕의 자손이라고 ‘속일본기(續日本紀)’에 기록돼 있는 사실에 한국과의 인연을 느낀다”고 말했다.

일본 왕실의 가계가 한반도 도래인의 핏줄과 연관이 있음을 공개석상에서 처음으로 직접 언급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일이었다. 한국 언론이 이를 크게 보도한 반면 일본 언론은 침묵했다. 왜? 그들의 자존심이 이를 흔쾌히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일본사도 한국사 일부' 인식을

와세다대에서 역사를 가르쳤던 미즈노 유(水野祐·1918∼2000) 교수는 일본 고대왕조는 한반도에서 이주한 귀화인들에 의해 성립됐다고 단정했다(天皇家 秘密, 1977). 일본 왕실이 제정한 법령(貞觀式 871년, 延喜式 927년)에 백제신과 신라신을 제사로 모시는 법도까지 확립돼 지금까지 전해 온다고 한다. 왕실뿐인가. 일본 전역에 백제와 신라, 고구려 등 한반도 이주자가 건설·제작한 사찰 불상 등의 문화재가 무수히 널려 있다. 일본 학계의 연구성과가 적지 않건만 이를 제대로 아는 일본인은 많지 않고 문화재 등 홍보 자료에마저도 사실을 제대로 밝히지 않은 예가 부지기수라 한다.

이런 내용이야말로 한국의 사학도에게는 보물이나 다름없는 연구과제들 아닌가. 새삼스레 ‘우리가 종가(宗家)’라는 민족주의적 우월감을 확인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두 나라의 역사적 토대를 확인하고 공유함으로써 근현대 이후 쌓인 불신과 반목을 해소할 길을 넓힐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저들이 추구하는 ‘긍정과 자존의 역사’의 원류에서부터 사실(史實)을 공유하는 것이야말로 우호와 선린관계의 첩경이 아니겠는가. 일본 역사연구에 한국인이 관심을 쏟아야 할 이유다.                                                                                                  (2008.8.5일자)
Posted by 길따라 구름따라
독도 영유권 논란은 돌발사건이 아니다. 근래 일본과 중국의 역사 도발은 끊이지 않았다. 동북아는 ‘역사전쟁’의 현장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다. 중국은 고구려나 발해를 자국 역사로 편입하려는 동북공정을 밀어붙여 왔고, 일본은 근현대사는 물론 임나일본부설 등을 앞세워 고대사 왜곡에까지 힘써 왔다. 사안이 불거질 때마다 우리 사회는 저들의 역사왜곡을 비난하며 ‘독도는 우리 땅’이라거나 ‘고구려사는 한국사’라고 외쳤지만 그때뿐이었다.

정부조차 마찬가지였다. 노무현 대통령의 2006년 4·25 특별담화 후 지난해 3월 출범한 동북아역사문제대책팀은 지난 2월 정부조직 개편 과정에서 해체되고 말았다. 교과부가 2006년 12월 발표했던 ‘역사교육 강화대책’도 용두사미에 그친 상태다. 교과부는 대학수학능력시험 사회탐구에 포함된 국사를 필수과목으로 권장키로 했으나 연세대 고려대 성균관대 등은 “수능과목이 축소돼 국사를 필수과목으로 하기엔 무리”라며 수용 방침을 철회했다.

말뿐인 '역사교육 강화대책'

우리의 기본 인식이 이런 수준이니 인근 강대국이 틈을 노리고 달려드는 것은 오히려 당연하다. 역사·정체성 불감증이 역사 침략을 불러들이고 있는 셈이다. 요즘의 독도 논란을 자승자박의 사례라고 하면 지나친 말일까. 아니면 흐린 하늘의 천둥 번개라고나 할까.

국사 과목이 수능 선택과목이 된 이후의 지원 추이를 보면 정체성 위기의 실상을 체감할 수 있다. 국사과목 응시율은 2005학년도 46.8%에서 2008학년도에는 18.2%에 그쳤다. 수험생의 절반에 가깝던 국사 응시자가 3년 새 5명 중 1명도 안될 정도로 격감한 것이다. 3년 후에는 어찌 될까. 국사를 선택하는 학생이 아마 10명 중 1명도 안될 것이다. 10년 후면 100명 가운데 한두 명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이런 사태를 방치해도 괜찮은가. 100년 후 한국은 과연 독자적 언어와 문화를 가진 나라로서 생존할 수 있을까. 낙관이 쉽지 않다. 사회공동체의 정체성은 대체로 언어와 역사를 뿌리로 삼는다. 그런 뿌리를 홀대하는 사회는 떠돌이와 뜨내기 장사꾼들의 임시거처나 다름없다. 자기 과거를 모르는 기억상실자는 부평초 같은 존재가 아닌가.

우리 사회는 요즘 역사를 어떻게 가르칠 것인지에 대한 고민마저 접은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수험생들이 국사를 기피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단순 암기가 귀찮고 지겹기 때문이다. 역사를 한낱 암기과목으로 여기는 교육현장의 풍토가 국사 외면을 빚고 있다. 이런 교육과 평가방식이 역사공부의 재미를 앗아가고 집단 기억상실증과 정체성 혼란을 부추기는 것이다.

암기 위주 역사교육 안 된다

국사를 한국인이 살아온 발자취로, 생존과 번영을 위해 안팎의 도전에 응전해 온 과정으로, 개인과 집단의 성취와 좌절의 체험기로 여긴다면 훨씬 재미있고 생동감 있는 탐구가 가능하지 않을까.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를 체험하는 듯한 모험과 즐거움의 세계를 열어줄 수는 없는 것인가.

역사교육을 제대로 하자. 맹목적 국수주의를 전파하자는 게 아니다. 한반도 생존과 번영의 조건을 시공간의 씨줄 날줄 속에서 이해하고 탐구하게 하자는 것이다. 깊은 뿌리에서 자양분을 끌어올려 나무가 번성하고 열매 맺듯이 우리 역사에 대한 이해를 통해 미래를 통찰하게 해야 한다.

‘역사는 무엇인가’를 쓴 영국 역사학자 E H 카(1892∼1982)는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다. 역사 공부를 접고, 그런 대화를 포기한다면 과거는 물론 현재를 보는 눈도 어둡기 마련이다. 시험 점수에 눈이 팔려 그런 대화를 포기하는 청소년들에게 미래를 맡기는 것이 과연 현명한가.

청소년들이 뿌리의식을 공유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국민통합의 기초도, 나라가 일어서는 원동력도 여기서 비롯된다. 역사교육 부흥 없이는 국가의 미래가 암담하다.
(2008.07.22일자)
Posted by 길따라 구름따라